진접 청소년ㆍ초등생 그들만의 공간, 맘껏 뛰놀며 해방감 느껴
- 작성자
- 펀그라운드진접
- 등록일자
- 2022년 9월 7일 14시 14분 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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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는 남양주의 대표적인 구도심이다. 인근에 3기 신도시인 남양주 왕숙 지구가 들어선다. 신도시와 대조적으로 진접은 그대로 낡아가는 것이 숙명이 된 동네다. 오일장이 열리고, 구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크랜드’ 옷가게와 ‘트라이’ 속옷가게가 있는 이 오래된 동네에 최근 반짝이는 새 건물이 들어섰다. 그런데 건물 입구에 적힌 이용 가능한 연령대가 무척 낯설다. ‘청소년만 입장 가능.’
지난 6월 문을 연 ‘펀그라운드 진접’의 모습이다. 그동안 PC방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용량 커피 프랜차이즈점을 전전하던 아이들이 그들만을 위해 설계된 공간을 처음 만난 날의 일성은 이랬다. “와, 강남에 온 것 같아요.” 진접의 청소년들에게 반짝이고 세련된 느낌의, 이를테면 강남 같은 아지트가 생긴 것이다.
이곳뿐 아니라 서울 강남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전용 쉼터가 생겼다. 강남구가 재건축 조합으로부터 기부받아 운영하는 키움센터다. 이 공간 덕에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방과 후 학교에 머물지 않고 방과 후 동네에서 논다. 골목길 놀이 문화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아니면 놀이터도 찾기 어려운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 쉬고 놀아야 할까? 도시에서 늘 소외되기만 했던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공간 처방을 한 두 곳의 이야기를 전한다.
펀그라운드, 대강당도 어학실도 없어
펀그라운드 진접(펀그라운드)은 옛날 읍사무소 자리에 들어섰다. 주변에 학교만 10여 개인데 아이들이 편히 머물 공간은 없는 동네였다. 펀그라운드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광동중학교에 다니는 이주현(14) 양은 쉴 틈이 생기면 주로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스티커 사진을 찍고 역시나 카페로 갔다. 펀그라운드가 생긴 이후 부모님에게 허투루 돈 쓴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던 카페 방문을 안 하게 됐다. 이 양은 “카페에서는 뭔가 사야만 쉴 수 있는데 펀그라운드에서는 돈 낼 필요 없이 편하게 쉬면서 친구들을 만나 보드게임도 할 수 있고,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어서 인터넷 강의 보기도 좋다”고 말했다.
남양주시는 제안공모전을 통해 2020년 건물을 설계할 건축가를 뽑았다. 제안 공모는 완성된 안을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건축가가 낸 아이디어를 보고 선발한 뒤 실제 설계안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공모전에 당선된 신호섭 건축가(건축사사무소 신 공동대표)는 “아이들에게 뭘 해주지도 않으면서 잘못했다고만 지적하는 어른이 더는 되지 말고, 청소년들이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청소년만을 위한 전용 공간을 만들자고 남양주시와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공간이 완성도 높게 지어진 것은 건축주(발주처)와 건축가, 시공사 간의 삼합이 잘 맞아 떨어진 덕이다. 펀그라운드에는 공간을 설계할 때부터 운영팀이 정해져 있었다. 통상 공공 건축물의 경우 다 지은 뒤에야 운영할 팀을 뽑아 공간과 실제 운영이 겉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펀그라운드는 발주처인 남양주도시공사 내에 있는 청소년지도사팀이 직접 운영한다. 신 소장은 “설계 단계에서 협의를 거칠수록 오히려 기존 청소년 공간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안으로 바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사용자가 될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디자인워크숍도 수차례 열었다. 아이들의 요구는 간명했다. “재밌고, 다양한 활동을 했으면 좋겠고, 강의실은 싫어요.”
펀그라운드 진접에는 청소년 시설이라면 흔히 있는 대강당이나 어학실처럼 기능이 정해진 실이 없다. 4층에 있는 강의실 두 곳과 실내 가운데에 있는 기둥을 제외하고 고정된 건 없다. 새로운 도전이다. 바뀌는 트렌드에 맞춰 필요에 따라 공간을 유연하게 바꿔 쓸 수 있다. 1층의 절반이 2층까지 탁 트여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좌석이 된다. 계단 앞에 스크린을 펼치면 영화관이 되고, 공연하면 관람석이 된다. 2층에 놓인 소파마저도 이래저래 변형시켜 앉기 좋은 형태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공간은 3층이다. 원통형의 아지트 공간이 실내에 17개가 있다. 공간마다 모양이 다른데 어떤 원통형 아지트는 내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창 너머 하늘을 볼 수 있다. 선인장 위로 그물이 쳐진 곳도 있는데 비 오는 날에 그물 위에 누워 있으면 천창으로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 신호섭 소장은 “펀그라운드라는 글씨체도 그래픽 디자이너에 맡겨 마치 아이들끼리만 통하는 암호처럼 보이게 디자인했다”며 “아이들을 위해 온전히 신경 쓴 공간이고, 딱딱한 학교를 벗어나서 무엇이든 해도 되고 또 안 해도 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랐다”고 전했다.
이런 어른들의 의지를 설명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펀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의 존재 이유를 바로 안다. 1층 내부에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 거치대가 있고,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도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건물에 들어선 아이들은 일단 뛴다. 탁 트인 개방감에 해방감을 느끼면서다. 김효진 펀그라운드 진접 센터장(청소년 지도사)은 “아이들의 기분을 억지로 누르려고만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절충안을 찾고 있다”며 “아이들과 논의한 결과 1층에 미니 탁구대나 펌프 게임기, 뒷마당에는 배드민턴 대를 설치해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펀그라운드에는 청소년 운영위원회가 있다. 15명의 청소년 위원과 청소년 지도사들이 협의해 공간을 운영한다. 김 센터장은 “청소년 전용 공간인 만큼 공간 주도권도 아이들에게 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시에는 진접을 포함해 펀그라운드라는 명칭을 단 청소년 전용 공간이 네 곳이나 있다. 실험적인 공간과 콘텐트 운영은 벌써 입소문이 나 장학사를 비롯한 교육계의 현장방문이 줄 잇고 있다. 이런 공간 경험을 쌓은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기대된다. [사진 진효숙 작가]